小石 2008. 1. 4. 15:56
    
    客愁簫條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수소조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蒼松千古節 紅挑白梨片時春  
    (녹죽창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胡地土 貴姬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희화용마외진)
    世間物理皆如此 莫惜今宵解汝身  
    (세간물리개여차  막석금소해여신)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오래 해가 바뀌고
    다시 가을이 왔으나 방랑의 행각이 그저 좋았다.
    사람은 먹고 입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때론 그리운 것이 여자의 몸이었다.

    때 마침 추석명절 함흥 땅
    어느 쓸쓸한 주막에 하얀 소복을 한 아낙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그네를 맞는다.

    “병연” 나그네 하룻밤만 묵어가겠소.
    글쎄요. 명절이라 아이들도 큰댁에 가고
    심부름 할 애도 없고 하니 딴 집에 드시지요.

    네- 하고 “병연”은 나올까 하다가.
    그 아낙의 모습이 쓸쓸하고 청조하고 아름다워서....
    다리도 아프고 하니 좀 쉬어라도 갑시다.

    “병연”은 어떻게 하면 이 여인 집에서
    하룻밤 쉬고 갈까 하고 수작을 걸었다.
    아주머니 추석이 언젭니까? 하고 물었다.
    어머? 내일이 추석이잖아요.
    어이없다는 듯 빙그레 웃고만 섰다.

    허-허 그래요-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하니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이로구나
    (홀로 타관 땅에 낯선 나그네가 되었으니
    해마다 맞는 명절에 어버이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당나라 王維(왕유)의 를 허심탄회하게 외우자.
    어머- 선생님 아주 문장가시군요?
    글쎄 문장가면 무얼 합니까?
    이렇게 객지에서 식객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누가 명절에 객지 밥이나 잡수시라 했어요.
    오늘이라도 고향으로 가시지요.
    허 강원도 영월 땅을 이제서 가요.

    어머나- 먼-데서도 오셨네,
    보아하니 점잖은 분인 듯하니
    제가 오늘은 돈 안 받고 하룻밤 재워 드릴 테니.
    내일은 일찍 떠나시오.

    음- 됐다 이 넓은 집에서 저 여자와 단 둘이만 잔다.
    “병연”의 가슴은 벌써부터 뛰기 시작한다.
    소복을 한 주모는 안방에 있고,
    “병연”은 그 옆방에 행장을 풀었다.

    이윽고 저녁상을 물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병연”은 제가 아까 글귀를 외우니 빨리 알아 드셨소?
    아- 주막을 하다 보니
    오가는 길손으로 인한 귀 동냥 헌거지요.

    아주머니는 총명이 過人(과인)이신 것 같고....
    “병연”은 자꾸 뜸을 들였다.
    이제 그만 들어가 주무시지요.

    그때 “병연”은 자신도 모르게 아낙의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 얘기나 좀 더 합시다.
    이거 객고가 너무 커서.

    수절 과부보고 무슨 얘기를 자꾸 하자 하십니까?
    어서 그만 들어가셔서 주무세요.
    하고 과수는 조용히 “병연”을 타이른다.

    男兒到處有美人(남아도처유미인)이라지만
    아주머니 같은 미인도 드물게 보았습니다.
    허나 제가 잘은 모르지만 아주머니 상호에
    오늘밤 逐客(축객)을 하셔 보았자.
    또 못된 놈이 찾아와서 아주머니의 훼절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 할 테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럼 저는 딴 주막에 옮겨가서 자겠습니다.

    ....뭐요? 제 상호가요?
    손님은 관상도 보시나요?

    암....글세 잘은 못합니다.
    허나 제가 없으면 오늘밤 넘기기가 좀......

    이양반 관상 운운 하면서 생과부 마음 흔드시는데...
    앗-따 사내 속 어지간히 모르시네.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전생의 인연이거늘
    어찌 그리 매정하오.

    나는 천금 만 냥을 준다 해도 훼절 한 적이 없는데
    그래 도대체 어쩌자는 거요. 하고
    아낙은 방문을 열고 내실로 들어 가 버렸다.

    “병연”은 자기 방애 들어가서
    짐을 다시 꾸리는 체하며 중얼중얼 거리니...

    『여봐라- 그 손님 가시지 말라 일러라.』
    하고 갑자기 연극을 한다.
    『여봐라- 가시지는 않을 테니
    손님 자리도 그 방에 펴두어라 일러라.』

    『호호, 그 말은 난중지 난사라고 일러라.』
    『난중지 난사는 어렵지 않다고 일러라.』
    『그만 주무시라고 일러라.』
    『꿈이 뒤숭숭해서 잠을 못 잔다고 일러라.』

    이윽고 “병연”은 백지위에 글을 한수 써서
    客愁簫條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수소조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나그네 베개머리가 쓸쓸하니 꿈도 뒤숭숭하고』
    『하늘에 가득한 가을달이 내 곁을 비추니 더욱 쓸쓸 하구나.』
    綠竹蒼松千古節 紅挑白梨片時春
    (녹죽창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녹죽과 창송이야 천고에 변치 않는 절개가 있고 하지만』
    『어디 홍도와 백리야 한 때의 봄에 피고 지는 게 아닌가.』
    昭君玉骨胡地土 貴姬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희화용마외진)
    『왕소군의 옥골도 호지의 흙이 되었고.』
    『양귀비의 화용도 말발굽아래 티끌이 되었네.』
    世間物理皆如此 莫惜今宵解汝身
    (세간물리개여차 막석금소해여신)
    『세상의 물리가 다 이런 것이거늘』
    『오늘밤 그대 몸 풀기를 아까워하지 마소.』
    글 쓴 종이를 슬그머니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어머나- 이건 또 뭐람.

    얼마동안의 침묵이 가을밤을 보낸 후.
    여봐라- 그 손님 이 방으로 들라 해라.
    하고 안방에서 문고리를 따는 소리가 들린다.

    “병연”은 염치 불고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아낙은 웃음으로 “병연”을 맞는다.
    기왕 제가 오늘 댁과 정을 맺게 되었습니다만
    저에게는 두 가지 간곡한 청이 있습니다.

    내 어찌 부인의 청을 거절 하겠소. 말해보시오?
    첫째, 저와의 이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과.
    둘째, 제 남편 무덤에 관한 山訟(산송) 문제입니다.

    아- 그야 어렵지 않지요,
    내일 아침 내가 길 떠나기 전 상소문을 써 줄 테니
    본관 사도께 올리면 해결되니 염려 놓으시오.
    호호,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게 다 좋은 염분 덕이 아니겠소.

    그럼- 오늘은 제 평생 처음 毁節(훼절) 하는 날이오니
    이 아래 욕간에 더운물로 차례로 몸을 딱은 뒤
    술 한 잔 나누고 정을 맺읍시다.

    얼마간 술잔이 오고가고 술이 거나한 뒤
    “병연”이 피곤한 빛을 보이자.
    아낙은 첩첩이 넣어 두었던 비단 금침을
    내려 차근차근 펴기 시작 한다.
    “병연” 부인 이제 그만 불을 끕시다.......

          - 小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