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의 말씀(아가서 포함)

마태복음26장11절. 가난한 자.

小石 2016. 6. 3. 22:43

"가난한 자.(고아, 과부)"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9:21~22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하고 물었을 때, 어찌하여 선한 것을 내게 묻느냐? 오직 선한 이는 한 분이시니라, 하시고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 하시니, 청년이 계명이면 이미 내가 다 지켰는데 무엇이 더 부족합니까? 하니,

 

청년이 행한 계명의 모든 것이 조건부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필요한 영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계명을 지켰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한 무지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조건 없는 은혜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대속(대신할 대, 속바칠 속, 贖錢)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贖良物로 바쳐 우리를 贖良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그 어떠한 권리도 없으며 모든 권리는 자기를 속량해준 주인에게 있는 것이 주종관계의 원칙이지요.

 

런데 청년은 계명을 지켰다 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백성은 틀림없는데 자기의 주인인 하나님은 내어 쫓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모든 계명을 자기가 다 행했다고 하니 그 청년의 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오직 자기의 自我만 가득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청년을 향하여, (19:21)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을 주라,그리고 나를 좇으라. 하셨는데,

 

우리가 아는 가난한 자란 물질이 궁핍한 자를 가난한자라 하지만, 또 다른 뜻으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베고픈 자를 가난한 자라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6:26~27 2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세상 양식인 떡을 얻어먹고 배부름을 위해 주님을 찾은 이들이, 세상이 말하는 가난한 자들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생하도록 있는 하늘양식이 없는 자가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이.

 

성경에서 가난한 자란 돈이나 재물이 없는 자를 가난한 자라 하지 않습니다,

첫째 :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문둥병자, 앉은뱅이, 소경, 귀머거리, 혈루병자, 벌거벗은 자)을 가난한 자라 합니다.

둘째 : 신랑이 없는 과부, 영원한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여자를 가난한 자라하며,

셋째 : 부모가 없는 고아, 아버지(하나님)나 어머니(교회)가 없는 자를 고아라하고, 런 자들을 가난한자 불쌍한 자라 합니다.

넷째 : 명예나 유업()을 잃은 자를 가난한 자라 합니다.

다섯째 : 어린아이와 같은 자이다. (18:3)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어린아이의 연약함 즉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입어야 하는 필요성을 말하며,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가난한 자라 하며.

포괄적 의미에서 가난한 자는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가난이라 하는 것입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한 자를 복되다하는 것은, 단지 그가 덕스럽고 좋은 장점만 가졌다고 해서가 아니며. 또한 가난하기 때문도 아니며. 다만 자기가 가진 재물이나 덕, 좋은 성품만으로 자신을 스스로 죄에서 구원 할 수 없음을 알고, 오직 로우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임을 필요로 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이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가난의 성경적인 척도이지요.

 

(19:22) 청년은 자기의 즉 자신이 율법을 잘 지켜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주님께 질문을 했던 것인데. 주님으로부터 의외의 답을 얻게 되지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재물)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여 가니라.” 하셨지요,

소유 : 자신, 자아(자기를 들어내는 것, 자기가 행한 것은 모두 자기 것이라 하는 생각)

재물 : , 염소, , 나귀, 약대, 등등(나의 심령 속에 든 나를 말하는 것)

하늘의 보화 :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남에게 베풀 때는 남이 모르게 항상 은밀하게 행하고 기억조차 하지 말라 하셨고, (6:2, 5, 16)그 행한 바를(구제, 기도, 금식) 남에게 알게 하면 그는 자기 상급을 이미 받은 것이므로 네 아버지께서 갚을 것이 없느니라 하셨지요,

(6:3)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며,

(6:4) 남을 구제 할 때에 은밀하게 하라 하셨고,

(6:6) 기도 할 때도 골방에서 은밀하게 하라,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이웃과 형제의 하나님이 되어 주어야 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쪽을 볼 때는 가난한 자인 것이고 세상 쪽을 볼 때는 부자가 되어야 하지

이렇게 습관적으로 사노라면 영생은 저절로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먼저는 우리가 공짜로 받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믿음의 기본이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함을 잊고 살 때가 너무 많다는 것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과 같이.

 

23: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이방인.

땅에 6년은 농사를 지어 먹되, 7년째 즉 안식년에는 그 땅을 묵혀두어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농사를 지어 먹게 하고 부스러기는 들짐승의 밥이 되게 하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25:10)안식년 7년을 일곱 번 49년 다음해 50년째를 희년이라 하여 이해는 자유가 공포되어 모든 부채가 말소되고 노예에서 해방되고 팔렸던 토지는 원주인에게로 회복하게끔 하셨지요.

 

또한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19:9~10 9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15~16 15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과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명다 남편이 없는 과부로서 보아스(예수)로부터 은혜와 보호를 받으며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 라오미를 공양하고 룻도 배불리 먹게 되며, 라오미와 룻이 진 빛()을 보아스(예수)가 대신 갚아주는(속전 : 속바칠 속, 돈 전) 대신 룻을 아내로 삼아 결혼하여 오벳을 낳게 되고 낳은 오벳을 나오미가 기르게 되지요.

(히브리어로 종(죄인)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니.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방인들도 부스러기(이삭)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정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귀한 역사를 이루지요, 이런 사마리아 여인도 남편이 없는 가난한 자이지요.

 

82:3~4 3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가난한 자들은 우리와 함께 있으며 주님은 이제 아버지께로 가시니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계시네요, 주님이 안 계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주에는 가난한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주님이 안 계신다 하니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이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영의 눈이 아닌 육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령으로 우리 곁에 와 계시지요, 24:28~32). 돈과 물질이 없어 가난한 자가 아니요, 하나님을 모르고, 그 심령에 그리스도가 없으며, 진리로 인하여 억압을 받으며, 어린아이와 같이, 받기만 좋아하고 베풀기를 싫어하는 이런 자가 바로 가난한 자인 것입니다. 나의 이웃에 있는 가난한 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속에 있는 나의 가난한 모습을 돌아보아 부유한 모습으로 다듬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스도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박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