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의 말씀(아가서 포함)

마태복음15장22절~28절,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小石 2017. 6. 16. 23:08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15:22~28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본문 22 가나안 여자란............”

9:20~25 20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가나안은 함의 아들이며 노아의 손자로 시돈과 헷을 낳고,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기르가스 족속, 히위 족속, 알가 족속, 신 족속, 아르왓 족속, 스말 족속,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다고 (10:15~18), 기록하고 있다.

 

본문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가나안 여자가 있고, 또 귀신들린 딸이 있고, 또 예수님이 계시고. 세 사람이 있는데 문제는 흉악한 귀신이 들린 가나안 여자의 딸로부터 시작 된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죄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경찰서라면 싫어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와 같이 귀신들린 딸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 병을 낳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머니인 가나안 여자가 중보자(仲補字)로 나서서 예수님께 엎드려 자기 딸을 낳게 해 달라고 기원하여 간청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런 경우가 성경에 몇 군데 더 있다. (8)백부장이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간청을 하고, (9, 5)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중풍병자가 낳음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11)에 기록된 죽은 나사로에게는 그 누이가 중보자(仲補字)가 되어 죽어서 무덤에 장사까지 지낸 오라버니를 살리는 기적을 이룬다.

 

이 중보자가 누군가? 창세기 27에서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라의 중재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형 에서()가 받을 복을 야곱이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야곱에게는 그 어머니 리브가가 중보자이며 바로 오늘 우리들이며 주의 종 목사들이지요, 우리가 바깥 어두움에 방황하는 영혼 즉 죄인들을 주님께 인도(전도)하여 그 병들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중보자가 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 주님 앞에 나와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중보자 역할을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를 하나님께 당신의 백성이라 소개하고, 또 자기 친구라고 소개하고, 때론 양자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시며 우리에게 당신이 행한 대로 행하라 명하시며 내가 진 십자가를 너희도 지라고 명하시고 아버지께로 가셨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으니, 우리도 죄인의 중보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는 받기만 하고. 남에게 주기는 싫다면,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본문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첫째. 여자가 지르는 소리를 제자들은 들었는데 예수님은 못 들었을까? 들었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이방여자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대답을 안 하니, 자존심이 상해서 그래 너 아니면 딴 무당한태 가면 되지 뭐 치사하게 뻐기냐? 그라고 돌아서면 부자 청년과 같다, 첫 번째 시험에서 탈락하고 말지요.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이방여인이 아니다.

 

본문 23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여자가 소리를 지른다,” 함은 끝없이 간구하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 기도하고 응답이 없으면 포기하나요, 그렇지 않지요 응답받을 때까지 간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번에는 제자들이 나서서 주님께 어떻게 할 것을 요구하게 되지요.

 

본문 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지요.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며 거절 하시지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란?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0:6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10:5~8 5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제자 12명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하셨는데 이 말씀과 대치되는 말씀이니 이상하지요,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나 악인의 길로 즉 생명이 없는 길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차라리 이스라엘 집이라 함은 거룩한 집또는 이스라엘의 12지파(야곱의 12아들) 중 구원받지 못한 백성, 다시 말해서 선한 양심(잃어버린 양)을 찾아 가라는 말씀이지요.

 

두 번째 제자들의 요구에도 또다시 주님은 거절하시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하시며 시험하여 거절을 하지요. 여기서도 가나안 인의 간구하는 기도를 그치고 포기 할 수 없지요, 응답 받을 때까지 끝까지 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인내가 필요한 시기이지요. (24: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

 

본문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이제 여자가 예수님께 경배를 하며 간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절했다 함은 단순한 어떤 부탁이나 주문의 차원이 아니고 바로 주님을 경배했다는 말씀이다.

 

본문 26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세 번째 주님은 더 모진 말로 개를 비유로 들어 시험하시며, 내 자녀(내 백성)에게 줄 떡을 종들에게 줄 수 없다 하시며 또 거절을 하시지요, 여기서 또 한 번 가나안 여자의 끝까지 참는 인내를 우리가 볼 수 있다,

 

본문 27“................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가나안 여자가 무슨 말을 합니까. 당신의 말이 틀림이 없는데, 종들도 주인의 소유로서 주인이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러나 주인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산다는 것이다.

 

본문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결국 가나안 여자가 인내로 승리하여 딸을 흉악한 귀신으로부터 해방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중보자의 역할을 확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뻗을 때 세 번씩이나 뿌리치시는 매정한 분인가? 우리가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그 손을 단번에 잡아주시는 그야말로 인자하신 주님이시다, 그런데 왜? 가나안 여자(우리, 성도)에게는 세 번씩이나 냉혹하게 악인의 역할을 하셨을까?

쉽게 얻은 영광과 재물은 쉽게 무너지고 없어지지요, 그것은 우리에게 그런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악역을 하신 것이다.

(5: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오늘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가나안 여자처럼 끝까지 인내하여 소망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박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