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장12절~30절, 다말(유다의 며느리)
“다말(유다의 며느리)”
본문 창38:12~30
창 38:2~5에 유다는 가나안 사람인 수아의 딸을 아내로 삼아 장자 엘과 차자 오난과 삼남 셀라 3형제를 낳았으며.
6절에서 유다는 큰아들인 엘을 가나안 여자인 다말과 결혼을 시키게 되고.
7절에서 엘은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므로 엘은 씨를 잇지 못하고 죽지요. 유다는 이스라엘의 계대혼인법에 따라 兄死取嫂(형수 수)라 하여
8~10절에서 둘째 아들인 오난을 다말에게 들어가 죽은 형을 위하여 씨를 잇게 해주어야 하지만. 그러나 형의 씨를 잇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다말과 동침하면서도 땅에 설정을 하지요. 그 일이 여호와께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신지라, 유다는 셋째 아들인 셀라를 다말에게 남편으로 주어야 하지만.
11절에서 그러나 유다는 셀라가 어리므로 성장하기까지 다말을 친정에 가서 수절하여 기다리라고 하지요. 유다는 엘과 오난을 잃었기 때문에 셀라도 죽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 계대혼인법과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셀라가 장성하여도 다말에게 주지 않지요.
12~13절에서 그때 유다의 아내가 죽게 되고. 유다는 홀아비가 되어 있었지요. 어느 날 유다는 친구(히라)와 함께 딤나로 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는데. 다말은 친정에 가서 있으면서 시아버지인 유다가 딤나에 양털을 깎으러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14~18절에서 다말은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창녀로 꾸미고 딤나 길 곁에 서서 시아버지를 유혹했다. 유다는 창녀로 알고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 다말은 유다가 화대로 염소새끼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염소새끼를 줄 때까지 약조물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줄 것을 요구하고 약조물을 받고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하여 유다의 씨를 받게 되지요.
20~23절에서 다음날 유다는 친구를 시켜 염소를 갖다 주고 약조물로 준 도장과 지팡이를 찾아오라고 했지만. 친구는 마을에 가서 창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오지요.
24~26절에서 그 후 몇 달이 지났을 때 유다는 며느리인 다말이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유다는 과부가 잉태를 했다면 행음했다는 것이므로 이스라엘 법에 의하여 처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딤나로 다시 내려와 다말을 놓고 재판을 시작하지요. 이스라엘 법은 행음한 여인을 마을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는데. 유다는 재판석에 앉아 며느리에게 말했다. "네가 내 며느리로서 남편이 없는데도 임신을 했으니 이것은 네가 행음한 증거다 너를 끌어내어 불사르겠다." 그때 다말은 말하기를 "내가 임신하게된 것은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은 것이니 이 물건 임자를 찾아달라"고 하며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 놓으니. 유다는 다말이 내놓은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확인하고 자기의 것임을 알고 놀리지요. 유다는 법으로 셋째 아들을 다말의 남편으로 주어야 하는데 죽을까봐 주지 아니 했기 때문에 며느리가 집안의 대를 잇고 여인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를 유혹한 사실을 깨닫고 "네가 나보다 옳도다. 내가 셀라를 주지 아니 했기 때문이다"고 하며 다말을 용서하게 됩니다.
27~30절에서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로 인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으며. 이 쌍둥이의 이름이 베레스와 셀라(세라)이지요.
“도장”
※ 창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 아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 도장이란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식으로 인장이라 하기도 하며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나타내는 도구로 모세를 통하여 (창 31:18)첫 번째 두 돌 판을 여호와께서 친히 새겨 백성들에게 보내 주시지요. 모세가 증거의 두 돌 판을 안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형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춤추는 것을 보고 증거의 두 돌 판을 던져 송아지 우상을 부서트리지요. 이어 (창 34:1~5)두 번째 두 돌 판을 모세에게 새겨 주지요. 救贖史로 보면 첫째 돌 판은 구약을 상징하며 두 번째 돌 판은 신약을 상징합니다. 이 돌 판을 지성소 언약궤 안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맛나 항아리와 함께 영원히 보관 하라 하셨지요. 이 도장은 印이라 하며 돌에 새겼으니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말씀을 상징하지요.
“끈”
◈ 여기서 말하는 끈은 허리를 동이는 끈을 말하며. 허리띠라 하기도 합니다.
※ 출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레 16: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 이 띠는 구속사로 볼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묶는 구원의 끈이요 즉 말씀으로 봐야 하며. 말씀은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일용할 양식으로 먹은 만나가 바로 생명의 말씀 이라는 것이지요. 끈(밧줄 허리 띠) 생명을 구하는 줄이지요 즉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 했지요.
“지팡이”
※ 창 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야곱이 자기 12아들에게 축복을 빌며 유다에게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기를 실로(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미칠 것이다 하고 축복기도를 드리지요. 이 지팡이는 권위의 상징이며 최고 실권자에게 주어지는 통치의 지팡이 이지요,
또 다른 지팡이로서 모세나 아론과 같은 목자가 양을 칠 때의 도구로 사용되던 지팡이로서 늑대나 여우를 쫓기도 하고 양을 다스릴 때 도구로 사용하는 지팡이이며, 모세의 지팡이는 애급에 10가지 재앙을 내린 능력의 지팡이 이지요,
아론의 지팡이는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를 맺는 기적의 지팡이이지요.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죽은 나무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기적의 지팡이로서 지성소 언약궤 안에 증거의 두 돌 판과 맛나 항아리와 더불어 함께 보관하여 영원히 보존하여 자손 대대로 기념하라 하셨지요. 지팡이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 도장은 변하지 않는 약속(언약)의 말씀을 상징하며,
◈ 끈은 생명줄 즉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을 상징하며,
◈ 지팡이는 하나님 부활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결론”
유다와 다말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이며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적으로 말하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근친상간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성경에서의 가족사를 돌아보면, 성부 성자 성령은 일체로서 즉 한위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단이라 하지요. 어머니도 교회고 성도도 교회이지요, 교회는 그리스도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해야 하지요, 그럼 성자 그리스도예수를 신랑으로 맞이하면 족보로 따져서 하나님은 성도의 시아버지가 되는 셈이지요.
그럼 성령은?
성령은 하나님의 영을 성령이라 하지요 일단 구원 받은 성도는 이어서 성령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럼 그리스도예수도 받아들이고 성령도 받아들이고 이건 근친상간이나 간음이 아닌가요? 그런 것이 아니지요 성부 성자 성령이 일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성경을 세상의 족보에 비교하여 이해를 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으며 진리가 될 수가 없지요. 먼저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먼저 계시의 이중성을 알아야 하며. 계시의 이중성을 모르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계시의 이중성이라 함은 양을 때로는 예수로 또는 성도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표현은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방법입니다. 모리아 산으로 번제를 드리려 나무를 지고 올라가는 이삭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예수의 그림자이지만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유다는 하나님을 예표하며 장자 엘은 예수를 예표하며, 차자 오난은 성령(그리스도)를 예표하며 딤나로 양의 털을 깎으려 내려온 유다는 (요 1:1~4)말씀이 생명이 되어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말씀(성령)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며 양의 털을 깎는 모습은, 양의 털은 양의 옷이고, 깎는다 함은 옷을 찢는다는 뜻이며, 우리들의 더럽고 추한 구습 즉 옛 습관을 벗기고 말씀으로 목욕을 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천국)에서 세상(딤나)으로 내려온 유다(말씀)을 처음 내려 왔다하여 처음 初자 初臨이라 하고,
다말(성도)이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즉 죄인인 우리가 예수로 우리의 죄를 가리고 유다는 (말씀)를 영접하여 진리를 잉태하게 되고 그 진리를 낳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게 되어 지혜로운 성도(다말)가 되는 것입니다,
유다가 딤나에 양 털 깎으려 내려 왔다 간지 석 달쯤 후 유다(성령)가 예루살렘에서 딤나로 다시 내려오는데 이것을 둘째 再자를 써 再臨이라 하며 재림은 다말(성도)을 심판하기 위해 심판 주로 오시는 거지요,
그러나 다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하나님 약속의 말씀(도장, 끈, 지팡이)을 잘 간직하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한 달란트를 가진 악한 종처럼 묻어두지 말고 다섯 달란트를 받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지혜로운 종처럼 하나님 약속 즉 언약의 말씀을 많이 남겨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스도예수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박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