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4장 2절.
아 4: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본문 “네 이(이빨) 는”
♣ 네 이빨은 양의 이빨 같다는 것이다. 이빨은 양식을 먹기 위해 꼭 필요한 신체의 일부이며. 이 세상의 동물을 크게 분류하면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분류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분류에 따라 이빨 구성이 다르게 창조 하셨음을 볼 수 있다. 육식동물은 송곳니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으며 초식동물은 송곳니가 없으며 앞니와 어금니가 잘 발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사람은 앞니, 송곳니, 어금니까지 고루 잘 발달 되어 있어서 육식과 초식을 겸하는 잡식동물인 셈이다,
◈ 본문 저자인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양의 이빨을 말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식물을 양식으로 하며 남을 해칠 줄도 모르는 평화로운 양의 이빨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늑대나 사자같이 다른 동물을 살해하여 잡아먹는 악독한 이빨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육식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양식이 아니지요 그래서 구약의 제물에 늑대나 여우 사자 같은 육식동물은 없다.
※ 창 1:27에서 사람을 창조 하시고 28절 후반 절에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고. 29절에서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하셨고 30절에는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기는 모든 것 에게는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셨으므로 창조 질서에서는 육을 양식으로 허락지 않았으나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백성들의 원망과 아우성으로 인하여 메추라기를 내린 적이 있으나 이는 저주의 양식이었다.
※ 민 11:31~33 31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32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본문 “목욕장에서 나온”
♣ 목욕은 자신의 몸에 걸친 허욕의 옷을 벗고 벌거벗은 몸을 물(말씀)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말씀 하는 것이다. 사무엘하 11장2절에 밧세바가 목욕하다가 다윗으로부터 청함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고, 룻기 3장 3절에 “룻”이 목욕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보아스”를 기다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 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일곱이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이 요단강 물(말씀)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일곱 번 목욕을 했다는 것이며. 성경에서 일곱 번이라 함은 완전수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수를 말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날의 수가 칠일 이며, 그러기에 일곱 번 목욕 했다함은 완전히 행함을 의미한다. 그것도 온 몸이 잠기도록 푹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떤 성도처럼 한쪽 발은 세상에 두고 또 한쪽 발은 교회에 들여 놓고 가 아니고 머리까지 푹 들어가니 그 살이 어린아이 같이 깨끗하게 되었다.
말씀의 목욕은 나아만 장군처럼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본인에게는 복이 되는 것이다.
본문 “털 깎인 암양이란?”
첫째 : 순종을 의미한다. 목자가 양의 털을 깎으려면 양이 몸부림을 치면 털을 깎기가 어렵겠지만, 그러나 양은 털을 깎으려면 가만히 엎드려 있지요, 털에 먼지나 지푸라기 똥도 묻어있어 더러운 털을 깎아주니 시원하니 가만히 있다. 그래서 순종이라 한다.
둘째 : 양에게 털은 사람에 비교하면 옷이지요. 털이 깎였으니 양으로서는 옷이 벗겨진 것이다, 구약의 양은 신약에 와서 성도이며 특히 어린 양은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옷은 계 19:8에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솔로몬의 초청을 받기 전 세상에서 행하던 죄로 얼룩진 행실의 옷을 벗고 말씀의 물로 목욕을 하여 죄악과 허물을 씻고 나온 암양, 구속 사적 차원에서 보면 성경에서의 암컷은 敎會 또는 육(肉)을 상징한다,
본문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 창 25:24~26 24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 이삭의 간구로 아내 “리브가”가 잉태를 하였는데 쌍태를 잉태하여 “리브가”뱃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여호와께 물어보니 창 25장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로부터 태어난 쌍둥이 아이가 “에서”와 “야곱”이지요. 이를 구속사로 보면 “이삭”은 예수그리스도요, “리브가”는 교회요 성도이며, “야곱”은 그리스도요 靈(남자)을 비유하며, “에서”는 肉(여자, 이방인)을 비유한다.
그러기에 에서와 야곱이 형제이듯 이방인도 모두 우리(성도)의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 또한 “아브람”이 86세에 얻은 아들 “이스마엘”은 肉의 아들이며 이방의 客이 되어 惡을 상징하는 아들이며,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고 99세에 할례(창17:24)를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으로 100세에 얻은 약속의 자녀 “이삭”은 택한 백성 즉 善民이며 善을 상징한다 했네요. “이스마엘” 후손과 “이삭”의 후손도 결국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 “다윗”과 “밧세바”사이에서도 아들 둘이 태어나는데 첫째아들은 불륜으로 낳은 아들 즉 육의 아들은 여호와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정식 결혼을 하고 낳은 아들 솔로몬이 대를 잇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육의 씨는 하나님의 자녀라 하지 않는다 했지요, 약속(靈)의 아들인 “솔로몬”이 다윗의 씨로 예수의 조상이 된다.
※ 롬 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 창 38:26~30 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동침하여 잉태한 아들이 쌍둥이로서 “베레스”와 “셀라”를 낳게 되고 “다말”이 낳은 아들 중 “베레스”가 예수의 조상(룻 12:12~22, 마 1:3 눅 3:33)이며, 셀라는 손에 홍사(붉은 실)을 매고 나왔다 했는데, 창 25:25에 “에서”가 붉은 전신을 갖고 태어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붉은색은 피를 상징하며 피에는 두 종류의 피가 있지요. 구원의 피와 죄악의 피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다음에 다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 양은 예수 또는 성도를 가리킨다 했지요, 이것을 계시의 이중성이라 하며 성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救贖史로 보면 성경에서 태어난 쌍둥이 중 먼저 나온 자는 肉을 상징하며 나중 나온 자는 靈을 상징한다 했지요, 그러기에 쌍둥이 중 어머니 뱃속에서 먼저 나온 자 “에서”나 “세라(셀라)”가 붉은색으로 표하고 나오는 것이 피를 상징하며 이 피는 죄악의 피로서 원죄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멘-
“마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더러운 세상의 옷을 벗고 깨끗하게 목욕하고 진리(새끼)를 낳은 양(성도)을 보니 모두 쌍태를 낳은 양(성도)과 같다는 것이다. 즉 영육을 동시에 낳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과 육이 동시에 거듭남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 인간들의 속에는 항상 善과 惡이 같이 존재하며, 그러기에 무슨 일을 행함에 있어 善과 惡이 먼저 나오려고 다툰다는 것이다. 때론 “에서”와 같이 惡이 먼저 나오기도 하지만 또한 “베레스”와 같이 善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의 심령 속에 든 惡의 씨앗은 제하여 버리고 오직 善만이 살아 영육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善民이 되시기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우리교회 박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