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화석정(花石亭)

풍경 갤러리

by 小石 2018. 7. 10. 10:21

본문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

세종 25(1443)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 깊은 곳이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설도 있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 1592)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29일 밤) 억수 같은 폭포 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져 80여 년간 터만 남아있는 것을 현종(顯宗) 14(1673)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李厚地) . 이후방(李厚坊)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 뒷면에는 율곡선생이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八歲賦詩> 가 걸려있다.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八歲賦詩"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먼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풍경 갤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양보  (0) 2018.07.16
제인폭포와 천상화원.  (0) 2018.07.15
외암마을 소경  (0) 2018.07.08
가을이듯 벌써 코스모스가....  (0) 2018.06.30
평화누리공원(임진각)  (0) 2018.06.2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