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여행. (2011.8.27~8.31)
백두산을 간다는 기쁜 맘으로 서둘러간 공항
출국수속을 마친 후 탑승을 앞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은
설빔을 앞 둔 초립동 마음처럼 마냥 설렘으로 가득 차다.
우리나라 뱅기(KAL)를 타고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심양공항에 중국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가니,
현지가이드가 우리를 맞는 인사말이 어눌하고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기사는
아예 말조차 통하지 않는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우리의 “靈山” “白頭山”을 가는데 우리 땅으로 가지 못하고
외국 땅을 통하고, 또 비록 우리 동포라고 하지만
외국인의 안내를 받고 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비애를 느끼며..
숙소를 향해 4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통화” 가는 길에
비오는 차창너머로 비치는 농촌의 풍경은
60~70년대 우리의 농촌과 흡사하다.
이튿날 여러 시간을 달려 도착한 “白頭山”
그러나 그 이름조차 낮 선 “長白山”
예부터 장백폭포란 이름은 익혀 들었어도...!
“長白山”란 생소한 이름이 우리를 맞는다.
누가 우리의 “靈山” “白頭山”을 “長白山”라 개명하여
자기들 명산이라 하여 우리들을 맞는다.
산악용버스로 갈아타고 서파로 향해 가노라니
수많은 우리의 “靈山” “白頭山(長白山)” 야생화들이
차창너머로 우리를 반겨 맞는다.
1236계단을 힘들게 오르노라니 “靈山”에 야생화,
조밥나물이 지천을 이루고, 바위구절초, 흰비로용담,
큰오이풀,등이 우리를 맞는다.
잠시 이들과의 만남을 뒤로하며 힘겨워하여 오른 “서파”
가랑비와 구름안개로 그 얼굴을 가리고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우리 “靈山”의 “天池”
각자 인증샷하기 바쁜데 갑자기 와~~아 하는 소리에
장옷을 비집고 드러내는 새색시 얼굴마냥 살포시
드러내는 “天地” 그나마 순간 이내 다시 구름으로 가리고
다시는 드러내지 않는 “天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
거대한 용암이 지하로 흘러 생겨난 소협곡 “제자하”를 지나
외국의 어느 협곡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천지가 용암을 분출하여 만들어 놓은 V자형의 “금강대협곡”,
칼로 다듬어 숫돌로 수천 년을 갈아세운 듯한 바위며....
바닥을 안고 흐르는 계곡물, 나무조차 살수 없는
병풍 같은 바위벽, 그 틈을 비집고 자란 야생화며.
참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케하며 감탄사를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셋째 날 “북파”로 가기위해 등반용 찝차로 갈아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무서운 속도로 달려 “白頭山”을 향해 오르며 보이는 광경은
참으로 경이롭기만 하다. 구름아래 보이는 각종 산이며
2500여m를 넘어서니 잔디 같은 풀만 나 있고 나무는
그림자조차 찾을 길이 없으며
이윽고 도착한 “천문봉”주차장
이곳은 아예 풀조차도 자라지 못하는 “땅”이다.
우리민족의 “靈山”인 “白頭山”은 우리나라와 중국 국경에 위치한
최고의 산맥으로 1년 중 8개월이 눈으로 덮인 꼭대기와
화산활동으로 생긴 하얀(황색)색의 부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白頭山” 최고봉 “장군봉”은 북한 땅에 위치했으며 2749m이며
“천문봉”은 천지 서쪽에 위치했으며 2670m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우중에 천문봉을 바라보니 일부 황토흙으로 덮인듯하여 가까이 가 보니
모두가 돌(화산석)이다. 이 황토빛 하얀 돌로 인하여 “白頭山”이라 한다.
“천문봉”에 오르니 역시 구름에 가리어 천지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잠시 후 새색시 얼굴마냥 살짝 보여주고는 이내 감추어 버리는 “天池”
하산하여 長白瀑布로 이동하는 중 바위틈을
비집고 솟아나는 뜨거운 노천온천을 볼 수 있으며,
뜨거운 온천수(유황)로 알맞게 익힌 계란이
반숙으로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으며 별미였다.
長白瀑布는 겨울에도 수량이 많아 얼지 않는다고 하며.
그 높이가 68m로 “白頭山”에서 가장 큰 폭포라 한며,
수량이 많을 때는 쌍폭을 이루고 가물어 수량이 적으며
한줄기 폭포를 이룬다고 함.
넷째 날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과(424년간)
20대 장수왕이 그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태왕기념비(높이6.4m 무게37t)
장군총보다 무려 4배나 큰 대형 고분 광개토태왕능으로 추정되는 무덤,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이는 장수왕능이 있는 압록강 변 “集安市”로 이동.
엄연한 우리나라 역사임에도 그(중국)들이 자기네 역사인 냥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항간에 소식으로는 비문까지 조장하여
자기네 역사로 왜곡하고 있으며 감시인을 두어 촬영까지 금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실감하고 돌아가야 하는 이 비통함...
또 침략자 일본에 의해 도굴되어 그 형태조차 가름하기 어려운 광개토태왕능,
그에 비하면 천수백년을 풍우에 시달리며 서도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돌과 돌이 서로 맞물리게 홈을 파서 피라미드처럼 쌓은 장수왕능 ,과
장수왕은 90세가 넘도록 장수하여 그 왕위를 그의 손자
문자왕에게 왕위를 물러 주었다고 함.
무덤 지붕을 이루는 正盤石을 아래쪽을 뺑 둘러가며
홈을 파서 물이 안쪽으로 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세심함을 지닌
그의 주인을 알 수 없는 조금 작은 무덤.
아마 이 무덤의 주인은 왕위를 물러 받지 못한 장수왕
아들내지 왕비의 무덤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함.
시내로 들어가 아파트 뜰 일부에서 와
강(압록강 지류)가에 도로 양편으로 길게 늘어선
축대모양의 국내성 성터가 압록강 강가에 아직도 강성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장수왕이 고구려 도읍을 평양으로 옮겨가지 않고
국내성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아마 아직도
만주가 우리나라 땅이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가이드의 말에 머리가 끄덕여짐.
이윽고 도착한 “鴨綠江” 우리의 靈山에서 흐르는 물이
만주 벌판을 기름지게 살찌우고 서해로 흘러가는 곳,
강 건너 저쪽에 남북의 한을 안은 우리 동포가 사는 곳인가?
보이는 모습은 이쪽(중국)과 다를 바가 없지만은
강가에 지어진 벙커와 거치되어 있는 기관총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은 느낌이며,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다른 나라의 국경이란 걸 실감케 한다.
또한 이쪽(중국)의 지붕은 모두 하나같이 붉은 기와이지만,
저쪽(북한)의 지붕을 모두 검은색 기와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다섯째 날 귀국하기 앞서 심양시내에 있는 북능을 돌아보았다
북능은 청나라 초대황제 누루하치의 아들이며 2대 황제(청태종)로서
병자호란을 일으켜 남한산성에서 인조대왕으로부터 굴욕적인
항복을 요구한 장본인이며 청태종은 조선을 침공하여 수많은 수탈과
포로를 잡아가, 그 포로로 잡아간 조선인의 손으로
북능이 지어졌다고 하니 우리민족에게는 한 맺힌 곳이며
치욕의 역사가 새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이윽고 비행기 창밖으로 비치는
붉은 석양을 뒤로하고 4박5일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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